아라오시의 탄광의 역사

● 메이지 시대(1868∼1912) 만다갱은 채탄과 각 갱도 내의 물 대책을 목적으로 1897년 공사에 착수했습니다. 만 다갱은 일본 탄광의 모범적인 사례가 되도록 미쓰이[三井]에서 총력을 기울여서 정비한 탄광입니다. 제1수갱은 1897년 11월에 개작을 시작해 난공사를 극복하고 이듬해 10월 에 노(櫓)의 조립에 착수해서 1902년부터 조업을 개시했습니다. 제2수갱로는 1898년 개작에 착수했으며 다량의 용수 문제가 있었지만 단 타쿠마가 영국제 배수용 펌프를 도 입함으로써 배수 문제를 극복하고 1908년에 조업을 개시했습니다. 제1수갱은 출탄(出 炭)과 입기(入氣)와 배수, 제2수갱은 사람의 승강과 배기와 배수 기능으로 나눠져 있었습 니다. 만다갱이 본격적으로 조업을 개시한 1908년경 제1수갱 주변에는 권양기실, 노, 배수용 펌프실, 단야장(鍛冶場) 등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제2수갱 주변에는 노, 선풍기실, 기관실 등이 배치되었고 이듬해에 권양기실이 완성되었습니다. 기관실은 만다갱 의 모든 동력원이 있는 곳이며 기관실에서 보내는 증기에 의해 여러 설비가 가동되었습 니다. 기관실에는 당시 만다갱의 상징인 적벽돌 31만 개로 만든 높이가 약 49m인 ‘빨 간 굴뚝’이 있었습니다.

● 다이쇼 시대(1912∼1926) 다이쇼 시대가 되면서 메이지 시대에 건설된 시설의 확충과 기술 도입, 기술 개발을 도모하며 출탄량 증대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제1수갱 주변을 중심으로 단야장(鍛冶場), 주물장(鑄物場), 용접장(溶接場) 등이 증축되어 전체 시스템이 완성되었습니다. 제2수갱 주변에는 로토식 선풍기를 도입했고 배수 펌프는 외국제에서 일본의 미쓰이미이케 제작 소의 펌프를 도입했습니다. 당시의 동력원은 ‘증기 동력’이었지만, 다이쇼 시대가 되면 서 갱 밖에 발전소가 건설되면서 점차 ‘전기 동력’으로 전환되었습니다. 다이쇼 말기의 만다갱 취업 인구는 약 3,500명이었고 하루 출탄량은 약 2천 수백 톤이었습니다.

● 쇼와 시대(1926∼1989) 쇼와 시대는 만다갱의 시설 확충 면에 있어서 최대의 전성기였으며 출탄량도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배수 설비로서 개착(開削) 이래 사용한 배수용 펌프 대신에 새롭게 배기 터빈 펌프나 듀플렉스 펌프가 도입 되었습니다. 또한 갱도의 거리가 길어짐에 따라 종 래의 배기 설비로는 지장이 있어서 갱 밖에 새로운 배기 전용 수갱을 개착하게 되었습니 다. 그러나 갱내의 작업 환경, 운반 효율의 악화 등으로 1951년 9월, 요쓰야마갱, 미카 와갱에 합병됨으로써 채굴이 중지되었습니다. 그 후로 불용 시설과 건물이 철거되었고 갱도 관리, 배수 역할은 폐산 직전인 1997년 3월까지 약 50 년간 담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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